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-독일 해군조약 (문단 편집) === 영국, 독일 외의 국가 === 당시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전쟁준비가 안 되어 있던 영국으로서는 이 조약이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했을 수는 있겠으나 명분상의 측면에서는 히틀러가 폭주해서 독일이 재군비화를 한 게 아니라 영국이 독일에 합법적으로 재군비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는 점이다. 영국이 단독으로 나치 독일과 해군조약을 체결한 행동이 히틀러의 베르사유 조약 파기와 재군비 선언을 공인해준 결과가 되었다. 안그래도 히틀러의 일련의 행동으로 1차대전 당시 협상국들이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마당에, 그 공동대응에 동참했던 영국이 뒤통수를 치며 히틀러의 행동을 공인해주었다는 것이다. 영국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게 통보하지 않고 이 조약을 맺은 것은 문제가 되었는데, 사실 영국이 '그럼 니가 독일과 전쟁해서 재군비 막아봐' 라고 하면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라 결국 비난만 좀 하다 말았다. 프랑스와 아무런 협의 없이 영국 독자적으로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배신감을 느꼈고 분노했지만, 현실적으로 독일 재군비를 막을 방법이 없던건 프랑스도 마찬가지라 어쩔 도리가 없었으니 이 조약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. 영국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하필 이 조약이 체결된 날이 [[워털루 전투]]가 벌어진지 120년 되는 기념일(6월 18일)이었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더 분노했다. 과거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제안으로 1934년 이탈리아의 스트레사라는 마을에서 영국, 프랑스, 이탈리아가 함께 독일의 재군비를 막자는 조약을 맺는다. 이 조약은 통칭 [[스트레사 전선]]이라 불린다. 사실 이탈리아의 입장은 독일을 막는 데 있는게 아니라 '영국, 프랑스와 동맹 맺고 독일을 견제한다고 하면 우리가 [[제2차 이탈리아-에티오피아 전쟁|에티오피아를 공격]]해도 영국, 프랑스가 못 본척 해주겠지?'라는게 진짜 목적이었다. 애초에 이탈리아는 독일의 재군비를 막는데 별 관심이 없었고, 에티오피아를 침공할 생각만 가득했는지라 독일이 재군비를 하건말건 신경도 안 썼다. 스트레사 전선은 별 강제 수단도 없는 그저 선언적 효과 뿐인지라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영국-독일 해군 조약이 맺어지면서 별 의미없는 조약이 되었다. 에티오피아 전쟁과는 별개로 그동안 나치 독일과 거리가 있던 이탈리아 왕국은 영프의 무력함을 확인했고, 사실상 협상국 간 공조체제에서 이탈하면서 나치 독일과 손을 잡게 된다.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견제하는 [[베르사유 조약|베르사유 체제]]는 이미 각국의 이해관계 문제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것이 공식적으로 표면화된 것은 이 조약부터다. 이후 [[라인란트 재무장]], [[오스트리아 병합]], [[뮌헨 협정]]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베르사유 체제는 종말을 맞이하고 1차 대전 직후 형성된 대독 포위망([[프랑스 제3공화국|프랑스]]-[[영국]]-[[벨기에]]-[[이탈리아 왕국]]-[[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|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]]-[[폴란드 제2공화국|폴란드]])과 [[스트레사 전선]]은 붕괴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